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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인의마을 2005. 5. 17. 14:43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지리산 통신 21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지리산은
내게 어머니의 품 같다.

너그럽고
푸근한 느낌과
한없이 깊고 넓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물론 신령스러운 기운과
웅장함으로 시작하여
지리산이 안고 있는 역사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면
피바다처럼 흘러가겠지만
나는 지리산의 현재만 보며
자주 지리산에 안긴다.

지리산을 거의 산청으로 진입하는 까닭은
그 안의 고즈넉한 산사를 들러
집채만한 바위와 맑은 물소리
햇살처럼 가득한 새소리에
잠시 마음과 귀를 씻어감이리라.

사찰에 들른 후
잠시 계곡의 바위에 앉아
신선처럼
물소리 명상...을 지나...새소리 명상

그리고 천왕봉이 뵈는
하늘아래 첫동네에 들어갔다.

길가에 토종 민들레가 하얗게 웃으며
반기었고 자잘한 풀꽃들이
잔잔하게 웃으며 손 내밀었다.

청명한 하늘과 투명한 햇살
청한 기운과 생명력으로 출렁이는
연두빛 나무잎새들은
자연 그대로의 순일한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사찰에서 얻은 쑥떡을 꺼내어 먹으며
산기슭에서 흐르는 물로 목을 축이며
마냥 걸었다.
산행을 준비한 것이 아니었기에
숲으로 숲으로 길없는 길을 걸었다.

입산통제된 팻말이 뵈는 숲의
작은 바위에 앉아
적막을 즐기며 고요도 배우며
원시림의 원시인을 상상하며
참 좋은 시간이 흘렀다.

천왕봉.
유월초에 오르기로 다짐하며
바라만 보아도 좋은 천왕봉을
떠나왔다.

아직 내게는 미지의 세계로 있는
천왕봉의 운무
그리고 하늘과 바람...
 
아직도 눈에 선하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시, 안치환 노래 )~~~'서린' 님의 블로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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